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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모차르트》, 노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문학동네, 1999 베토벤 자신은 모차르트처럼 상스러운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모조리 무시하거나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베토벤은 바흐나 하이든의 작품들을 비롯해 모차르트의 악보를 수집했고 빌려서라도 계속 공부했을 정도로 모차르트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베토벤이 자신은 모차르트와 다르다고 공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이 속했던 시대의 구조변동 덕분이었다. 불과 한 세대 정도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처했던 정치사회배경은 급격히 달라졌다. 모차르트가 고용된 제후에게 아침 문안을 올리거나 귀족들의 미술시간을 위해 피아노를 반주해 줘야 했던 시대에 속했다면, 베토벤은 그가 지나가면 왕족들마.. 2024. 4. 12.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란드 러셀,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05 러셀의 자서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세 가지 정열이 나의 인생을 결정하였다. 즉 사랑에 대한 갈망, 인식에 대한 열망,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W, 바이셰델, 《철학의 뒤안길》,이기상 외 옮김, 서광사, 1990, 421쪽) 그에 비해 정열지수가 턱없이 낮은 나는 사랑, 인식, 고통에 대한 민감함 모두가 지지부진하다. 아마 내 삶이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나의 자서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될 것이다. “ 내 인생을 결정한 건 게으름이었다.” 러셀의 책을 제목만 따져본다면 내 자서전의 제목으로 적합할 정도다. 하지만 내가 책을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으른 사람이.. 2024. 4. 12.
시우 책푸리 〈스갱 씨의 염소〉/시우 책푸리 큰물음: 염소는 용감한가요? 아니면 멍청한가요? 염소는 용감해요.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던 염소는 밥맛이 없었어요. 목에는 밧줄이 묶여 있어서 마음껏 뛰어놀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답답한 울타리를 뛰어 너머 산으로 갔어요. 산은 천국이었어요. 자유롭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맛있는 꽃들이 널려 있었고, 남자 친구도 생겼거든요.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저씨의 피리 소리를 듣고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돌아가면 다시 자유를 잃고 묶여 지낼 것 같았거든요. 늑대와 마주쳤을 때 처음에는 어차피 잡아먹힐 것 같아 체념을 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힘세고 강인했던 르노드 할멈만큼 자기도 오래 견딜 수 있는지 시험을 하려 했어요. 염소는 자신이 원하던 자유를 .. 2024. 4. 5.
영어가 더 익숙한 시우랑 읽은 책 시우는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학년은 4학년이구요. 잠시 한국에 머무는 중에 저랑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생활은 3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편하고 익숙합니다. 그러다보니 한글을 어려워 하더라구요. 부모님의 권유를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지 못해 수업을 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가 논리적인 글쓰기를 배웠으면 하셨습니다. 영어 독해력은 두꺼운 영어소설을 좋아서 읽을 만큼 뛰어나고, 영어 글쓰기도 훌륭했어요. 그런 까닭에 현재 한국어 단계에서는 자유롭게 글을 적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음에도, 한글로 쓰는 걸 어려워 해 저랑 같이 글을 썼어요. 시우가 맞춤법을 많이 틀렸는데, 글 쓸 때 한 두개 정도만 알려주고 가능한 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한글을 어려.. 2024. 4. 5.
수업엿보기3: 독도인더헤이그 《독도 인 더 헤이그》, 정재임 지음, 휴먼 앤 북스, 2015 독도와 한일 고대사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입니다. 저자가 국제법을 전공한 법관으로 독도를 둘러싼 논쟁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초등5~6학년 아이들과 읽었던 책입니다. 일본입장 한국입장을 나누어 디베이트를 했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던 책입니다. 한 아이는 책을 잡더니 밤새 읽었다고도 하더라구요. 그만큼 치열하게 디베이트를 치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에는 왜 일본이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는지 의도에 대한 설명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소설을 보완하는 자료로, 아래 외무부에 근무하시다 은퇴하신 홍승목씨의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문이 있고, 근현대사에 대한 어려운 내용들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읽히고 같이 공부했던 텍스트입니다. .. 2024. 3. 28.
수업엿보기2: 희망의 이유 『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궁리, 2000 이 책은 초등 6학년 아이들과 읽은 책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읽기에는 쉽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훌륭하게 소화를 하고 글쓰기를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 책을 탐독하는데 사용했던 물음목록입니다. 2024. 3. 27.
퇴退: 물러나기와 물리치기 아래 글은 예전 얼마간 제가 남의 공부를 제 공부삼아 했던 시절 쓴 글의 일부입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썼던 터라 거칠기도 하고 요구사항에 맞춰 쓰다보니 다소 비약적인 부분이 보이기도 합니다. 퇴退: 물러나기와 물리치기(2015) 퇴계 退溪라는 이황의 호는 그가 은거했던 지명을 호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본래 토끼 골(兎溪)이라 불리었는데, 퇴계가 거처하면서 퇴계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호라는 것은 자경(自警)의 의미를 가진다. 고려말의 선승 혜근의 호가 나옹(懶翁:게으른 늙은이)이었다거나 정약용의 호는 여유당(與猶堂:삼가고 조심함)이었던 것도 자기 경책의 의미를 포함한 것일 테다.1) 퇴계 스스로가 조정을 멀리하고 늘 은둔하려 했으니, 퇴계의 호는 자신에 대한 경책의 의미와 동시에 자신의 .. 2024. 3. 23.
애착愛着, 집착執着, 고희苦喜 교육심리학/ 애착에 관해..../ 2006년 가을 애착愛着, 집착執着, 고희苦喜 00 가을바람이 좋다. 오랜만에 버스다. 낯익은 풍경이 조용하다. 바람을 타다 생각을 잃었다. 버스가 멈췄다. 아저씨가 시동을 끈다. 바람을 잃었다. 아저씨가 신문을 든다. 버스 시간을 맞추려나 한다. 바람이 식혀주지 않는 햇살은 따갑다. 저기 앞 멈췄던 차들이 달리길 시작한다. 옆 사람은 눈을 붙인다. 달리지 않는 차창 밖으로 멀어져가는 차들. 멈췄을 때야 비로소 달렸던 것을 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멈추면 달렸던 것을 잊게 된다. ♬ “Sometimes keys we hold unlock the doors yet other times we stray 때론 쥐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어도 다시 길을 잃는다”. 그리고 멈춰있다.. 2024.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