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창고/서평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

by 글숲지기 2024. 4. 13.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 김훈태, 북노마드, 2008

 

 네 편지를 이제 받았어.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읽게 되서 다행이야. 부럽더라. 왜냐면 난 서른을 너 마냥 알뜰하게(?) 고민을 못한 것 같거든. 그리고 그 고민들을 미뤄 버렸던 것 같아. 네 편지를 뒤늦게야 챙기게 된 것도 그 때문인지도...그렇지만 즐거웠어. 네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듯 편지를 읽어 내렸어. 그리고 이렇게 너의 어투를 따라 편지를 쓰고 있어.

 

 교토에 머물게 된다면 나 역시 먼저 자전거를 빌릴 거 같아.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가모가와를 따라 해지는 쪽을 향해 네가 지났던 길을 달려 갈거야. 그러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아무데나 엎어두고 가만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정적아래 숨을 고를 거야. 유라쿠소 게스트 하우스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숙소는 위켄더스가 가까운 쪽에 얻고 싶어. 교토엔 절이 넘쳐나니 어디서나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난 미셸스보다 위켄더스의 큼직한 테이블과 푹신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맘에 들거든. 매일 오전 거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어. 근데 한 가지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너의 커피 순례와는 다르게 난 우동 순례를 하려고 해. 마치 영화 "우동"을 찍듯이 교토의 우동집은 다 섭렵 해 볼려구. 네가 소개해 준 우동집 "오멘"은 교토에 도착한 첫날에 찾아 갈꺼야. 

 

 철학자의 길은 매일 거닐어도 좋을 것 같아. 네가 170cm 벚꽃나무를 강조한 게 좀 걸리긴 해. 그치만 난 다소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더 낮은 가지들에 겸손하게 몸을 낮출 준비가 되어 있어. 좀 지친다 싶으면 가모가와 상류로 가서 가모가와에 발을 넣고 물장구를 칠거야.  그러다 다시 호젓하게 숲길을 걸을 테야. 엔라쿠지로 가는 히에에잔은 나의 성지가 될 것 같아.

 

 오타와 폭포에 가서는 나도 너처럼 욕심을 부릴 것 같아. 세 물 줄기 모두 받아먹으려고 긴 바가지를 이리 저리 휘젓겠지. 그리고 물통 세 개를 미리 준비해가 각각 넘치도록 채워서 뿌듯하게 품고 내려올지도 몰라. 건강, 부, 사랑. 어디나 사람들은 참 상투적으로 너무 닮지 않았나 해. 어쩌면 일본인과 한국인이 너무 닮은 건지도. 한국인들이 용한 곳이나, 교회나 절에 가서 비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

 

 감동이었어. 꽃이 시들지 않는 윤동주 시비. 도시샤대학 외진 구석 시비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 있다니. 게다가 너도 그곳에 꽃을 들고 찾아가다니. 난 요즈음엔 ‘시의 힘’이라던가 ‘정신의 힘’에 대해 그다지 믿지 못하게 되었거든. 그리고 고독이란 게 꼭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우토로. 솔직히 난 한동안 잊고 있었어. 그런데 넌 거길 찾아갈 용기를 냈던거구나. “언제나 힘을 내십시오.” 넌 어설퍼 했지만, 나 역시 달리 적절한 말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것 같아. 다행히도 주민회가 재작년 2011년까지 우토로 마을부지 1/3까지 확보 했나봐. 기나긴 시련과 싸움 끝에 마음을 좀 놓을 수 있게 되셨나 보더라구. 그런데 아직 상하수도 시설은 정비가 안 됬다고 해. 지금까지는 팔짱을 끼고 방관하던 일본정부도 웬일로 나서서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과 협의회를 꾸린다고 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 좋을 텐데.

 

 네가 일본에 대해 가진 반감과 이질감, 석연찮은 느낌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속으로 스며든 너를 발견해. 그래서 넌 일본인이 아닌 듯 영어를 쓰거나 여행지도를 보이도록 다니며 꼭 티를 냈어야 했던 건지도 몰라. 너만 일본인으로 보이는 거는 아닐 거야. 나 역시도, 수많은 한국인들도 그들과 너무 닮아 보이지 않을까?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일본은 더 가까운 지도 몰라. 그건 역사 아래 이어져 내려온 어떤 생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과거를 대하듯 멀면서도 가깝게 일본을 여기는 지도 모르겠어. 나도 교토에 가려해.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구다라, 아스카, 야마토, 나라의 땅을 밟으며 옛 백제의 흔적을 둘러보고 싶거든. 한 동안 여행을 간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 여행을 생각할 기력도 없을 만큼 지쳐있었는데, 네 편지 덕분에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어졌어. 오랜만에 편지를 쓰기도 해. 아리가또.

 

 안녕!

 

 어느 길에선가 다시 만나길 바라며...

 

2008...

'옛글창고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지독한 ,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0) 2024.04.13
몽테뉴 수상록  (0) 2024.04.13
길 위의 화가 한생곤의 노란버스  (0) 2024.04.13
모차르트  (0) 2024.04.12
게으름에 대한 찬양  (0) 2024.04.12